주요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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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The War of Jenkins’ Ear and the Spectre of French Universal Monarchy
Doohwan Ahn
IF 0.3 (2023)
Global Intellectual History
1739년 영국-스페인 전쟁(통상 ‘젠킨스의 귀 전쟁’으로 불림)은 유럽의 정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Guarda Costas(연안 해안 경비대)의 약탈 행위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그 원인인 것으로 대체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총리 로버트 월폴 경(Sir Robert Walpole)은 스페인과의 전쟁이 프랑스에만 이익을 주고 영국 경제를 교란할 것이라 두려워 정치적 생명을 걸고 전쟁을 피하고자 했다. 반면, 헨리 세인트 존(Henry St. John) 비스카운트 볼링브로크(Viscount Bolingbroke)가 이끈 야당(‘Country’파)은 해양 제국 비전을 활용해 상황을 역이용함으로써 정부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 글은 볼링브로크의 ‘Country’ 정당이 월폴 내각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보편 군주정(프랑스의 보편적 군주 지배) 가능성에 결코 덜 불안해하지 않았으나, 전쟁을 스페인과 즉각적 예방 조치로서 서둘러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가 스페인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자, 그들을 분리해 다시 세력 균형을 재정립하는 일은 극도로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또한 1716–1731년의 영-프 동맹(Anglo–French Alliance)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하노버의 영향력이 한층 더해져, 위트레흐트(Utrecht) 평화 정착이 프랑스를 유리하게 크게 왜곡되었으며, 이미 프랑스-스페인 동맹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따라서 너무 늦기 전에 스페인을 격파하고 오스트리아와 다시 우호 관계를 맺어야 했다.
키워드: 젠킨스의 귀 전쟁; 볼링브로크; 1716–1731 영-프 동맹; 1725년 빈 조약(Treaty of Vienna of 1725); 프랑스 보편 군주정; 공개 성명Disclosure Statement; 이해 상충 가능성은 보고되지 않음.
https://doi.org/10.1080/23801883.2023.2184710
Monarchy
Alliance
Politics
Ideology
Opposition (politics)
Empire
Spanish Civil War
History
Economic history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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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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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Lord Bolingbroke’s history of British foreign policy, 1492–1753
Doohwan Ahn
IF 0.5 (2023)
History of European Ideas
헨리 세인트 존, 볼링브록 자작(Henry St. John, Viscount Bolingbroke)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을 종결한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Treaty of Utrecht)의 기획자이자, 영국의 초대 총리였던 로버트 월폴 경(Sir Robert Walpole)과 평생에 걸친 경쟁 관계에 있었다. 그는 또한 디오니시우스 오브 할리카르나수스(Dionysius of Halicarnassus)의 다음 말에 근거하여 역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역사는 예증을 통해 가르치는 철학(history is a philosophy teaching by examples”. 월폴의 휘그(Whig) 과두정치에 대한 볼링브록의 역사 비판에 대해 학계의 상당한 주목이 이루어진 반면, 유럽의 국제사에 대한 그의 논의는 단지 위트레흐트 조약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취급되어 추가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 글은 유럽 정치에 관한 볼링브록의 저술을 영국의 대외정책사(history of British foreign policy)로서 재구성한다. 그의 초점이 세력균형(power balance)을 유지하는 데에서 영국이 수행하는 역할에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며, 이 글은 대중적 믿음과 달리 볼링브록이 한노버(하노버) 정부를 유럽 정치에 관여했다는 이유 자체로 비판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 맞서 윌리엄 3세(William III)의 ‘구 제도(Old System)’를 포기한 것에 대해 비판했음을 보여준다. 볼링브록은 역사가 되풀이된다고 믿었다. 스투아르(Stuarts)가 오십여 년 전 프랑스가 패권(hegmony)을 달성하도록 도왔던 것처럼, 한노버는 프랑스가 사적 이해(private interests)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시 우위를 회복할 수 있게 함으로써 유럽의 세력균형을 다시 교란시켰다.
https://doi.org/10.1080/01916599.2023.2171463
Hegemony
Politics
Power (physics)
Political history
Foreign policy
Treaty
Economic history
History
Political science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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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From Theory to History: Re-reading the English School of International Relations
Doohwan Ahn
Korean Journal of International Relations
학문으로서 국제정치 연구가 정립된 이래 지금까지 다양한 전회가 있어 왔다. 본 논문의 목적은 최근 진행된 주요한 전회 중 하나인 역사적 전회를 주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영국학파로 통칭되는 영국 국제정치이론 위원회의 문제의식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데 있다. 미국 국제정치학의 보편주의적, 현재주의적 경향과 대조적으로, 영국학파는 시초부터 근대 주권국가 체제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팽창에 주목했고, 이를 통해 국제정치학의 국가적, 지역적 속성을 일깨우고 자극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영국학파의 첫 세대인 허버트 버터필드, 마틴 와이트, 헤들리 불이 품었던 문제의식은 제대로 탐구된 바가 없다. 본 논문은 이들의 지적 여정에 대한 추적을 통해 국제관계사를 진보도 반복도 아닌 새로운 위기의 끝없는 연속으로 보는 역사관을 그 핵심으로 제시하고 그 뿌리를 기독교 신학에서 찾는다. 버터필드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등장한 신외교의 정치적 이상향주의에 맞서 기독교의 원죄와 섭리에 기초한 과학적 역사학을 설파했다면, 와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국제정치를 탈출과 생존의 문제로 보는 시각을 각기 혁명주의와 현실주의로 유형화하는 한편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현실적으로 메워보려는 합리주의 시각을 기독교 신학에서 도출했다. 반면, 행태주의에 자극을 받은 불은 버터필드와 와이트의 역사철학을 사회과학적으로 풀어내고자 노력했다. 특히 불은 미・소 냉전 시기 정책 연구의 만연을 개탄하며 무정부 사회 개념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고난을 어떻게든 끝없이 헤쳐 나가야만 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을 직시할 것을 호소했다. 이러한 점에서, 영국학파를 특징 짓는 문제의식은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국제관계사가 갖는 의미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시도로 기독교에서 배태된 근대적인 학문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라 하겠다.
https://doi.org/10.14731/kjir.2022.06.62.2.7
Reading (process)
Linguistics
Mathematics education
History
Literature
Sociology
Psychology
Philosoph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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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The Cambridge School of Intellectual History and the Politics of Historicism
Doohwan Ahn
Korean Political Science Review
반 세기 전 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존 포칵, 존 던, 퀜틴 스키너가 야심차게 품었던 지성사의 기획은, 적어도 영미 학계에서는, 이제 어엿한 역사학의 한 분야가 되었다. 이들의 연구방법인 언어 맥락주의와 연구 결과인 공화주의 이론은 정치학 분야에서도 상식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이 가졌던 본래의 문제 의식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본 논문은 케임브리지 학파의 문제 의식이 전간기 독일에서와 유사하게 영국에서도 불붙은 ‘역사주의 위기’ 논쟁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특히 본 논문은 휘그 사관과 실증 사관의 사이에서 비판적 종합을 시도했던 허버트 버터필드, 로빈 콜링우드, 마이클 오크숏의 선구자적 노력에 주목한다. 이들은 전자의 목적론적 역사 인식에 대한 후자의 공격에 찬동하면서도 후자의 과도한 사실 숭배도 경계했다. 이들은 과거가 현재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사고 방식의 차이로, 이는 케임브리지 학파의 언어 맥락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둘째는 역사 속 사건이 필연적 인과 관계가 아니라 시간적 선후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 학파에게도 역사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점철되어 있는 우연의 세계였다. 이들이 보기에, 전통적인 정치사상사 연구와 마르크스주의 사관은 모두 다양한 상황 전개가 얼마든지 가능한 역사의 불확정적 본질을 무시하고 있었다. 본 논문은 과거와 다른 현재를 강조하는 케임브리지 학파의 역사주의 인식에서 현재와 다른 미래를 꿈꾸는 급진 정치의 가능성을 점쳐보고 마치고자 한다.
https://doi.org/10.18854/kpsr.2021.55.1.003
Historicism
Politics
New Historicism
Intellectual history
History
Sociology
Political science
Law
Art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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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케임브리지 학파의 지성사와 역사주의 정치학
Doohwan Ahn
http://dspace.kci.go.kr/handle/kci/503068?show=full
Computer 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