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과학기술사와 지식 형성의 역사
이 연구 주제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과학, 기술, 의학 지식이 어떤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연구실은 과학을 보편적이고 단선적으로 발전하는 체계로 보기보다, 지역의 제도, 국가 권력, 전쟁, 산업화, 교육, 번역과 같은 요소들과 긴밀히 얽힌 역사적 산물로 이해한다. 특히 한국, 중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 사회에서 근대 과학이 어떻게 수용되고 변형되었는지, 또 기존의 지식 체계와 어떤 긴장과 접합을 이루었는지에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연구실은 과학사, 기술사, 의학사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접근을 취한다. 유전학, 농업개혁, 산업기술, 공중보건, 의학 담론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지식이 단지 실험실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 이념, 계급 관계, 국제 질서, 식민과 탈식민의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밝힌다. 리센코주의, 유전 개념의 계보, 사회주의 과학의 인식론 등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연구 소재이며, 동아시아 과학기술의 특수성과 세계사적 연결성을 동시에 해명하는 데 기여한다. 이 연구는 오늘날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과학 지식의 권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정당화되는지,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어떤 지식은 중심이 되고 어떤 지식은 주변화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현재의 과학기술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나아가 동아시아 경험을 통해 서구 중심의 과학사 서술을 재검토하고, 보다 다원적이고 관계적인 과학기술사의 틀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과 과학 지식의 비판적 재해석
연구실의 또 다른 핵심 주제는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과학 지식과 제도의 형성 과정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과학을 단순히 진보와 합리성의 산물로 보는 대신, 식민주의, 제국주의, 냉전, 발전주의, 학문 권력과 같은 구조적 힘이 과학의 내용과 위상을 어떻게 규정해 왔는지를 탐구하는 연구다. 특히 ‘서양과학’이라는 범주 자체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리고 비서구 사회의 지식 전통이 어떤 방식으로 배제되거나 재배치되었는지를 검토한다. 이 연구는 과학기술학(STS), 역사학, 철학, 정치사회 분석을 가로지르는 학제적 방법을 활용한다. 한국 과학사 교육에 대한 자기성찰, 브뤼노 라투르를 비롯한 과학지식사회학의 논의, 사회주의 과학의 인식론, 공중보건과 사회정의의 문제 등이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비판적 연구 프로그램을 이룬다. 연구실은 과학의 객관성과 보편성이 실제 역사 속에서는 늘 권력관계와 제도적 환경 속에서 작동해 왔음을 보여주고, 과학을 둘러싼 해석의 틀 자체를 다시 묻는다. 이러한 작업은 단지 과거를 다시 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대학, 연구정책, 기술개발, 공공지식의 생산과 교육 현장에서 어떤 목소리가 중심이 되고 어떤 경험이 주변화되는지를 재검토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주제는 과학사를 넘어 지식 민주화, 학문적 성찰, 지역적 경험의 복권이라는 실천적 의미를 지니며, 한국과 동아시아의 과학기술 연구를 보다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방향으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
인류세, 환경 위기, 그리고 기술관료주의의 역사
연구실은 인류세와 대가속이라는 문제를 역사적·인문사회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연구에도 주력하고 있다. 인류세는 인간 활동이 지구 시스템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한 시대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단순한 환경 담론을 넘어 산업화, 에너지 체제, 자본주의, 국가 정책, 과학기술 인프라의 역사와 맞물린다. 연구실은 이 개념을 통해 기후위기와 생태 위기를 자연과학의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역사적 조건을 해명하려 한다. 특히 탄소 기술관료주의, 데이터 센터, 기술적 고독, 불균형한 발전과 같은 키워드는 이 연구의 구체적 방향을 보여준다. 동아시아의 산업화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와 기술 관리 체계가 어떻게 정당화되었고, 탄소 중독적 발전 모델이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되었는지를 추적함으로써, 현재의 환경 위기를 장기지속의 역사 속에 위치시킨다. 또한 서지 분석과 과학기술학적 해석을 결합하여 인류세 담론 자체가 어떤 학문적 네트워크와 인식론적 전환 속에서 확장되는지도 함께 살핀다. 이 연구의 의의는 환경 문제를 도덕적 경고나 기술적 해결책의 차원에만 두지 않고, 역사적 책임과 지식 체계의 구조를 묻는 데 있다. 즉, 누가 환경 위기의 원인을 생산했는지, 누가 그 피해를 더 크게 떠안는지, 그리고 어떤 기술적 해법이 다시 새로운 불평등을 낳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연구실은 인류세를 둘러싼 과학, 정책, 윤리, 역사 서사를 통합적으로 재구성하며, 지속가능성과 정의를 함께 고려하는 비판적 환경인문학의 기반을 확장하고자 한다.
동물, 농업, 의학을 통해 본 현대 중국의 과학과 사회
연구실은 현대 중국을 배경으로 동물, 농업, 의학이 과학기술 및 국가 권력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탐구하는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한다. 돼지 사육, 약용 동물, 농업개혁, 군중과학과 같은 사례는 과학이 인간 중심의 추상적 제도만이 아니라 비인간 생명체와 물질적 환경을 포함한 복합적 체계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은 과학사와 동물사, 환경사, 의학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중국 사회주의 시기의 일상과 생명정치를 새롭게 조명한다. 예를 들어 마오 시대 농촌의 돼지 사육은 단순한 축산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주의 축적 체제, 자립 경제, 집단노동, 생물학적 개량, 배설물 재활용 등과 맞물린 정치경제적 장치로 해석된다. 약용 동물과 의학적 실천의 문제 역시 국가의 근대화 전략, 전통지식의 재구성, 생명 자원의 관리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연구실은 이처럼 동물과 농업을 통해 과학기술을 바라봄으로써, 국가가 생명과 생산을 조직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생태적 함의를 드러낸다. 이 연구는 현대 중국의 과학과 사회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오늘날 생명자원 관리, 산업형 축산, 인간-동물 관계, 환경 윤리에 관한 문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간의 발전 서사 뒤에 놓인 비인간 존재들의 역할과 희생을 역사 속에서 복원함으로써, 과학기술의 성과를 다시 묻는 비판적 관점을 제시한다. 결국 이 주제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속에서 생명, 생산, 권력이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연구 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