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종두법(Variola pus를 접종하는 것)과 우두 백신이 우월성과 열등성의 관점에서 이해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종두법의 현대적 성격과 역사적 역할이 다시 검토되고 있다. 또한 종두법과 우두 백신을 모두 도입한 정약용(1762-1836)의 역할 역시 그 과정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종두법과 우두 백신이 확산되는 기반은 매우 취약하였다. 이는 서구 연구에 대한 정치적 탄압뿐 아니라, 의학 지식 네트워크의 부재, 그리고 백신 림프를 확보하고 접종하기 위한 대중적 지지와 기술이 부족했던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중 이 글은 예방접종 연구에서 종종 간과되어 온 원천 기술, 즉 백신 림프의 채집·보관·접종에 관련된 기술의 중요성에 초점을 둔다. 백신 림프 없이는 예방접종이 불가능하다. 종두법의 경우에는 천연두 환자에게서 채집하므로 백신 림프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우두 백신의 경우에는 성숙되고 갓 추출된 백신 림프에 대한 안정성의 문제와 기술적 난이도가 있었다. 우두 백신의 경우에는 우두 림프를 확보해야 했지만, 19세기 전반까지는 한국에서 우두 림프를 확보할 방법이 없었다. 우두 림프를 자급자족으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해외에서 수입한 우두 림프는 부패하여 효과를 잃었다. 백신 림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접종 방법이 아무리 좋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종두법과 우두 백신은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모두 ‘계승’의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두 백신에 사용된 것은 중국식이 아니라 터키식(또는 서구식) 종두법이었다. 중국식 종두법은 백신 림프를 콧구멍에 불어 넣는 방법이었던 반면, 서구식 종두법은 전완 피부에 절개를 가한 뒤 그 절개 부위에 백신 림프를 접종하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중국식 종두법이 우두 백신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왜 백신 림프를 접종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전완의 피부에 절개를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에서 종두법이 우두 백신으로 진화하는 과정에는 정치적·사회적·의학적 의심뿐 아니라 백신 림프를 확보하고 접종하기 위한 기술의 전수와 같은 의학적·기술적 요인에서도 주요한 장애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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