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두창(cowpox) 백신은 정약용(1762-1836)과 같은 실학자(Practical Learning)인 ‘실학’ 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정치적·사회적 기반은 매우 취약했다. 여기에는 서학에 대한 정치적 억압, 의학 지식 네트워크의 부재, 정부와 대중의 지원 부족, 그리고 백신용 림프(vaccine lymph) 및 접종 기술의 부재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876년 개항 이후, 두창 백신의 도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조선이 수행사절인 수신사(Sushinsa, Joseon Diplomatic Mission)를 통해 일본을 방문한 뒤를 계기로 일본과의 새로운 의학 교류의 물결이 본격화되었다. 일본은 두창 백신과 서양의학을 통해 한일 관계를 급진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믿었고, 조선은 이를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황금의 기회’로 여겼다. 그 결과 두창 백신의 실행을 위한 의료기술 네트워크가 한국과 일본에서 형성되었으며, 조선의 관리들은 수집, 보관, 접종 방법과 같이 두창 백신과 관련된 원천 기술을 축적하고 지식을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연구는 개항 이후 두창 백신의 도입과 확산이 지석영(1855-1935)의 능력과 활동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며 한 개인의 역할에 지나치게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본 연구는 의학 지식과 기술의 관점에서 두창 백신의 도입과 확산을 조명하고, 소두창(smallpox)의 확산에 따른 두창 백신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관심의 증대와 같은 개항 전후의 차이를 탐색하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는 개항 이후 두창 백신의 도입과 확산이 개인의 의지와 투쟁에 단순히 의존한 것이 아니라, 의료기술 네트워크의 구축과 활용에 달려 있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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