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을 “국민에게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하며 증진하기 위한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공중보건은 동아시아에서 위생(hygiene) 개념이 형성·발전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전통적 위생은 개인의 치료와 장수를 강조한 반면, 현대적 위생은 개인의 신체와 훈육(discipline)을 담당하는 국가의 상태였다. 동아시아 각국은 근대국가의 건설에 맞추어 위생과 의료의 분야에서 현대적 과업을 수행해야 했고, 근대국가가 개인의 신체에 개입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여겨졌다. 근대적 국가 건설에 대한 요구가 강화될수록, 개인의 위생보다 공중보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동아시아에서 위생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센사이 나가요(1838-1902)는 메이지기(明治期)에서 현대 국가의 신체적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위생(sanitation)’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였다. ‘공중보건(public health)’이라는 개념은 1890년 오가이 모리(1862-1922)가 서구식 공중의 건강보호 조치들을 공중보건으로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공중보건은 일본에서 보편적인 사회적 담론으로 발전하였다. 일본의 공중보건은 식민지 조선, 대만, 중국으로 확장되었다. 청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는 동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위생이 일본 민족의 힘의 근원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20세기 초 중국공화국(중화민국) 정부는 근대 교육 개혁과 제도 개혁을 추진하면서 일본의 사례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일본식 ‘공중보건’은 다양한 위생 법령과 위생 설비에 이식되었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근대 위생이 도입되어 확산되었고, 일본의 ‘공중보건’ 개념이 주로 전파되고 있었다. 일본에서 공중보건은 대체로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활동으로 막연히 정의되었으나, 실제로는 검역과 환경 인프라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예방과 치료를 동시에 중시하는 미국식 공중보건의 개념이 일본의 식민 통치 하에서도 이미 등장하기 시작했다. 1920~1930년대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식 공중보건과 미국식 공중보건 담론이 경쟁하였으며, 의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흥미롭게도 동아시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저비용으로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실제의료비(Actual Medical Expenses) 캠페인’과, 예방과 치료를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사회의학(social medicine)이 주목을 받았다. 이는 20세기 전반 동아시아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며 의료 불평등이 심화된 데서 비롯된 현상이기도 했다. 민간 운동의 성격상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거나 국가 의료체계의 근본적 개혁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실제 의료 운동은 국가와 사회에서 공중보건 보장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다. 사회의학은 사회 환경이 질병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관계를 연구하고, 예방의학과 치료의학을 활용하여 공중보건을 증진하는 방안을 연구하였다. 사회의학이 국가 권력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중국의 State Medicine처럼 국가 차원의 실천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반면, 그렇지 못하다면 식민지 조선에서처럼 인민보건운동(People's Health Movement)과 같은 민간 운동에 그치게 될 수 있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은 일본식 위생을 대신하여 일본식 위생의 흐름을 미국식 건강으로 이끄는 극적인 전환점이었다. 해방 직후, 의료 서비스를 더 공공화하기 위한 의료의 국유화를 둘러싸고 좌우 진영 간 논의가 있었다. 의료계는 의료의 국유화에 대해 대체로 공감했으나, 의료 인력과 재정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할 수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식 보건 연구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가면서, 예방과 치료 활동을 강조하는 미국식 공중보건이 정착되었고, 보건소(health center) 체계의 확립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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