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70년의 콜레라 방역 조치는 근대 한국에서 가장 실패한 격리(검역) 사례 중 하나를 이룬다. 1961년에 민주 정부를 전복한 군사 정부는 장기적인 권력 장악을 목표로 헌법을 개정하려 했으며, 1969-70년의 콜레라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선행 연구는 1969-70년의 콜레라 유행이나 열악한 위생 체계를 통제하는 데 있어 국가 권력의 한계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군사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조직, 시설, 인적 자본이 실제로 존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1963-64년에 콜레라 유행이 발생했을 때, 군사 정부는 혁명 과업의 일부로서 콜레라로부터 국민을 방어했다. 또한 정부는 미생물학에 정통한 의료 전문가 팀의 자문을 구했다. 1969년에는 정부가 콜레라에 대응하는 와중에 북한의 세균전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이 위기를 피하기 위해 장기 집권을 준비해 왔던 박정희의 군사 정부는 콜레라 방어와 관련해 성공적인 모범 사례를 제공해야 했다. 군사 정부에게 감염병 정보의 은폐와 왜곡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다른 많은 의료 전문가들은 정부 기관의 활동보다 국제 기구의 활동을 더 신뢰했으며, 언론은 정부가 콜레라 사망 통계를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부는 콜레라 위기를 예방하는 데 실패하자, 사실을 숨기고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비밀성을 더욱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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